제2장
오전, 카페숍.
룸 문을 막 열어젖힌 강자연은 차갑고 무거운 분위기의 남자에게 시선이 꽂혔고, 2초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내 능숙한 비즈니스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권 변호사님, 이런 우연이?”
“우연이 아니라, 당신 뜻대로 해준 것뿐입니다.”
권도준은 담담하게 웃으며 커피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길게 뻗은 다리를 꼬고 소파 등받이에 제멋대로 몸을 기댔다.
“그럼 제가 성의에 감사라도 해야겠네요?” 강자연은 그의 맞은편으로 가 앉았다.
그녀의 의뢰인은 동아리 대학교 동기로, 이 도시에서 유명한 재벌가였지만 집안싸움으로 파산한 상태였다.
권도준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고, 더는 대꾸하지도 않았다.
“임진우, 너 양심도 없니? 3년 전에 이혼했는데, 내 돈 절반을 떼어가겠다고?”
몸에 딱 붙는 섹시한 붉은색 원피스를 입은 정가윤이 그를 보자마자 분노에 차 소리쳤다.
“내가 그때 너한테 그만큼 돈을 안 썼으면 네가 오늘날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겠어? 넌 양심도 없냐?” 임진우가 되물었다. 그는 재기를 위해 이 돈이 꼭 필요했다.
“내가 왜 줘야….”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강자연이 다리를 꼬며 나른한 목소리로 말을 끊었다.
“말싸움으로 해결될 거였으면, 변호사는 뭐 하러 선임했겠어요?”
두 사람은 순간 입을 다물었다.
강자연은 맞은편 남자를 보며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권 변호사님도 잘 아시겠지만, 이혼 합의서에 서명만 하고 이혼 신고를 하지 않았다면 그 합의서는 휴지 조각이나 다름없습니다. 우리나라 민법에 따라 부부 공동 재산은 이혼 시 양측이 절반씩 나누고, 채무 또한 공동으로 분담해야 하죠.”
권도준은 그녀를 힐끗 쳐다봤지만 대답하는 대신 이렇게 물었다.
“임진우 씨, 제 의뢰인과 결혼한 후 외도하여 다른 여성과 여러 차례 관계를 가진 사실, 인정하십니까?”
임진우는 다리를 꼬고 까딱거리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었다.
강자연은 놀라 그를 돌아보았다. 이 일은 왜 자기에게 말하지 않았던 거지?
“씨발, 밖에서 어떤 남자가….”
그가 말을 채 뱉기도 전에, 강자연은 이 멍청한 남자를 쳐다보며 슬쩍 팔꿈치로 쳤다. 그리고 웃으며 되물었다.
“권 변호사님, 증거는 있으시고요?”
변호사 미팅 시에는 녹음될 수 있으니 입조심하라고 그렇게 말했건만, 기억력을 개한테 줘 버렸나?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제가 그 인간이 여자 모델이랑 호텔 들어가는 걸 똑똑히 봤어요!” 정가윤이 화를 내며 말했다.
“정가윤 씨, 권 변호사님이 증거가 뭔지 안 알려주시던가요?” 강자연이 웃으며 물었다. 다행히, 증거는 없었다.
“나한테 여자가 있다고? 네 옆엔 지금 다른 남자 없나? 지난 몇 년간, 또 얼마나 많은 사장들이랑 자고 다녔는지 누가 알아!” 임진우가 코웃음을 쳤다.
“난 당신이랑 이혼 합의서에 사인한 후에….”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권도준이 이 멍청한 여자를 쳐다보며 즉시 말을 끊었다.
“증거를 가지고 말씀하시죠.”
그들의 이혼 합의서는 휴지 조각이라고 말했는데, 혼인 관계 중에 다른 남자를 만났다고 인정하는 건가?
알몸으로 쫓겨나고 싶은 건가?
멍청하기 짝이 없군!
강자연은 옆에 앉은 남자를 쳐다봤다. 아내가 다른 남자를 만나는 걸 알면서도 증거 하나 남겨두지 않은 건가?
하, 그녀는 말없이 이마를 짚었다. 앞으로 바빠지겠네.
“임진우 씨, 제 의뢰인과 3년간 별거하며 남편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동안 뭘 하고 지내셨습니까?” 권도준이 낮은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저는….” 임진우가 입을 열기도 전에, 강자연이 날카로운 언변으로 대신 대답했다.
“정가윤 씨에게 더 나은 삶을 제공하기 위해 밖에서 줄곧 노력하며 분투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가장 어려운 시기에, 그의 법적 아내는 부부 공동 재산을 독차지했고, 그로 인해 그가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어 결국 사업 실패와 파산에 이르게 된 겁니다. 만약 법정까지 간다면, 정가윤 씨는 재산 한 푼도 못 받을 각오하셔야 할 겁니다!”
“강 변호사님, 지금 협박하시는 겁니까? 그가 어떻게 파산했는지, 제 의뢰인과 관계가 있는지 없는지는 조사해보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권도준은 자신의 의뢰인을 쳐다봤다. 이 점에 대해서는 그녀도 말한 적이 없었다.
강자연과 처음으로 사건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것이었는데, 꽤 의외였다.
“그 점에 대해서는, 권 변호사님께서 얼마든지 조사해보십시오. 제 의뢰인은 아내에게 1900억 원이 넘는 부동산, 고급 차 등을 사주었지만, 그룹이 파산하기 전후로 정가윤 씨는 단 한 푼도 내놓은 적이 없습니다.”
“부부 공동 재산을 독차지하고, 공동 채무 변제를 거부한 데다, 다른 남자를 만난 것까지 더해진다면… 권 변호사님, 합의 이혼으로 자산을 반으로 나눌지, 아니면 법정까지 갈지, 잘 생각해보시죠.”
강자연은 몸을 살짝 앞으로 기울이며, 날카로운 눈빛으로 웃으며 말했다.
……
“이혼이 마무리되기 전까지 모든 여자랑 거리 두세요. 상대방에게 꼬투리 잡힐 짓 하지 마시고요. 그리고 호텔 출입 기록, 사진, 문자 같은 거 전부 깨끗하게 처리하세요.”
차 안에서, 강자연은 운전을 하며 그에게 신신당부했다.
“알았어.”
임진우는 이제 그녀가 존경스러워 죽을 지경이었다. 원래 정가윤의 돈을 나눠 갖는 게 좀 창피하다고 생각했는데, 강자연의 말을 듣고 나니 순식간에 자신이 당당하게 느껴졌다!
허리가 꼿꼿하게 펴졌다.
“당신 아내, 다른 남자랑 동거합니까?” 강자연이 다시 물었다.
“동거한 지 3년이나 됐어.” 그가 팔짱을 끼며 코웃음을 쳤다.
“그럼 일이 쉬워지겠네요….” 그녀는 입꼬리를 올리며 웃더니, 갑자기 길가에 차를 세우고 그를 불렀다.
“지금 바로 돌아가서, 당신 아내 사는 곳에 CCTV를 설치하세요… ‘도둑 방지용’으로요.”
“그 여자가 날 집에 들여보내 줄까! 우리 별거한 지 3년이나 됐고, 그 빌라는 걔가 산 건데.”
“멍청하긴. 당신은 아직 걔 남편인데, 자기 집에 돌아가는 게 문제 될 게 있어요? 그리고 지금 이 시간엔, 아마 권도준이랑 같이 있을 겁니다.”
“알았어, 지금 바로 갈게!” 예전에 그 여자한테 그렇게 잘해주고 돈도 그렇게 많이 썼는데, 이제 와서 이렇게 무정하게 굴다니.
그렇다면 자신을 원망하지 말라지!
저녁.
강자연이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임진우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권도준이 그를 고소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죄목은— 변호사 매수!
그녀에게 빨리 자기를 구해달라고 했다.
“진짜 돈 줬어요?” 그녀는 기가 막혀 웃으며 물었다.
“권도준이 밤에 전화해서 그 여자 모델을 찾았다고 하더라고. 그 말에 덜컥 겁이 나서, 그래도 동기인데 좀 봐달라고 찾아갔지. 그러면서 1억 9천만 원짜리 수표도 줬고….”
“바보예요? 일부러 떠본 거잖아요! 그냥 아무 여자나 데려와서 당신이랑 잤다고 말하는 거랑 똑같아요. 물증도 없는데 누가 믿겠어요? 당신 같은 사람은 법정 가기도 전에 그냥 당하고 끝나는 거예요!”
“아군은 안 무서운데, 돼지 같은 팀원이 제일 무섭다더니!” 그녀는 팔짱을 낀 채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내가 돼지야, 내가 돼지라고. 자연아, 너 꼭 나 구해줘야 해. 권도준 그 개자식, 동기 정도 전혀 생각 안 하더라. 진짜 열받아 죽겠어!”
“변호사 매수 1억 9천만 원이면 최소 징역 5년이에요. 고소하면 빼도 박도 못 하는데, 제가 어떻게 도와줘요?”
“나, 내가 감옥 가는 건 괜찮아. 근데 너는, 첫판부터 권도준한테 지면 명성에 금 가는 건 물론이고, 법조계 사람들이랑 다른 동기, 친구들이 얼마나 비웃겠어?”
임진우가 불쌍한 척하며 말했다.
강자연은 침실 안을 몇 바퀴 서성이다가, 다시 한번 진지하게 당부했다.
“다시 한번 말하는데, 제가 없는 자리에선 절대 상대 변호사 단독으로 만나면 안 돼요. 그리고 당신 아내랑 얘기할 때도 말조심하고요. 덫에 걸리지 않게, 아셨어요?”
“이, 이번엔 진짜 기억했어. 그럼 넌 어떻게 할….”
그가 뇌물 사건을 어떻게 해결할지 물어보려던 찰나, 전화가 끊겼다.
……
다음 날 오전, 천지 법무법인.
“강 변호사님, 저….” 안내 데스크 직원이 물으려 했지만, 강자연은 걸음을 멈추지 않고 한마디 툭 던졌다.
“저희 권 변호사님 여자친구예요.”
여기 직원들은 그녀를 보고 모두 얼어붙었다. 최근 이틀 동안 그녀와 권 변호사의 관계에 대한 소문이 파다했기 때문이다.
강자연은 사무실 문에 걸린 명패를 보고, 노크를 한 번 한 뒤 그대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권도준은 사건 서류를 보고 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서먹하고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
“강 변호사님, 무슨 일입니까?”
강자연은 단정한 검은색 정장 원피스 차림에, 살짝 웨이브 진 긴 머리를 나른하게 어깨에 늘어뜨리고 있었다. 8센티 높이의 검은색 하이힐을 신은 그녀는, 분명 지극히 단정한 모습이었지만 세상을 홀릴 듯한 매혹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그녀는 그의 곁으로 다가가, 관능적인 자세로 그의 책상에 걸터앉았다. 한 손으로 그의 넥타이를 들어 올려 손안에서 부드럽게 매만지며 장난을 쳤다.
“어젯밤에 같이 자놓고, 벌써 이렇게 차갑게 굴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