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장

유수현이 고개를 들어 김지연에게 물었다.

“배달 시켰어?”

김지연이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으로 걸어갔다.

“문 열어보면 알겠지.”

문을 열자 밖에 서 있는 사람을 보고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며칠간 잠잠했던 감정이 다시 격해졌다.

“여긴 어쩐 일이에요?”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유부녀가 미혼 남성 집에 머무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당장 나랑 돌아가.”

“유부녀라는 말은 이제 저한테 안 어울리는 것 같은데요? 우리 이혼하기로 합의했잖아요. 내일 구청 가서 이혼 수속 마무리하죠.”

그의 눈에 거슬리는 일은 없어야 했다.

그녀는 내일 이혼하자고 말하고 있었지만, 강태준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는 그대로 그녀를 강제로 번쩍 안아 들고 문밖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문 앞에 이르러 강정우에게 지시했다.

“사모님 짐 가지고 나와.”

언제나와 같은 독단적인 태도였다.

“이 미친놈아, 나 내려놔…….”

김지연이 다리를 버둥거리며 저항했지만, 강태준은 그녀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그대로 그녀를 안고 계단을 내려가 차에 태웠다.

이혼 수속이 하루라도 마무리되지 않는 한, 그녀가 밖에서 지내는 것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것이 그의 원칙이었다.

“이혼하고 싶어? 내일 같이 가.”

“좋아요.”

이혼 이야기가 나오자 김지연은 냉정을 되찾고 한 글자로 답했다. 그녀는 자세를 바로잡고 창밖으로 고개를 돌려 그에게 뒤통수만 보였다.

차가 아파트를 빠져나가자, 김지연은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창밖 풍경을 보며 남몰래 속상해했다.

강태준 앞에서 자신에게는 발언권이란 없었다. 이혼이든 다른 일이든, 모두 그의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오늘 그와 함께 돌아가고 싶지 않았지만, 강제로 차에 태워진 것처럼 말이다. 예전에는 반항하지 않았고, 지금은 반항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는 언제나 강압적이었고, 이 짧은 결혼 생활은 단 한 번도 공평한 적이 없었다.

어차피 끝날 관계이니, 내일까지만 유지하자.

저택으로 돌아오자 유 아주머니가 먹음직스러운 음식으로 한 상을 차려놓았다. 강태준은 집에 들어서자마자 서재로 들어간 뒤 나오지 않았다.

김지연은 혼자서 편안하게 식사를 했다. 재벌가 사모님으로 3년을 살면서 그녀의 위장도 섬세하고 까다로워졌다. 역시 집에서 유 아주머니가 해주는 음식이 입맛에 더 잘 맞았다. 집을 나와 있던 며칠 동안, 그녀는 제대로 된 밥 한 끼 먹지 못했다.

마치 피난이라도 다녀온 사람처럼 김지연의 식욕이 폭발했다.

어쩌면 임신 때문인지, 그녀는 쉽게 허기를 느꼈다. 뱃속의 작은 녀석도 먹는 것을 탐내는 걸 보니, 틀림없이 작은 먹보일 것이다.

유 아주머니가 갓 끓인 국을 들고 오다가 식탁 위의 빈 그릇을 보고는 잠시 멈칫했다. 이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두 사람이 결혼했을 때부터 강 회장님의 지시로 이들의 살림을 돌봐왔다. 3년 만에 사모님이 자신의 요리를 이렇게 맛있게 먹어주는 것은 처음이었다.

요리사에게 있어 빈 그릇보다 더 큰 칭찬은 없었다. 유 아주머니가 웃음을 머금고 물었다.

“사모님, 밥 한 그릇 더 드릴까요?”

김지연이 손을 저으며 약간 민망해했다.

“아주머니, 저 배불러요.”

유 아주머니가 주방으로 돌아가 빈 그릇을 하나 가져왔다.

“배부르시면 해물탕 한 그릇 드세요. 이 해산물은 사장님께서 사람 시켜 보내주신 거예요. 막 잡자마자 항공 직송으로 왔다고 하더라고요. 아주 신선해요. 사장님께서 저녁에 꼭 끓여드리라고 특별히 당부하셨어요.”

김지연은 잠시 침묵했다. 병 주고 약 주는 건가?

유 아주머니는 이미 탕 한 그릇을 떠서 그녀 앞에 놓아주었다.

그릇 바닥에는 대하 살과 홍합이 깔려 있었다. 유 아주머니의 칼솜씨는 대단해서, 살코기들이 일정한 크기로 잘려 있었다. 탕에는 토마토와 치즈가 더해져 먹음직스러운 색을 띠었다. 진하고 부드러운 치즈 해물 스튜는 예전에 그녀가 가장 좋아하던 음식으로, 거의 며칠에 한 번씩 유 아주머니에게 끓여달라고 할 정도였다. 강태준은 좋아하지 않았지만, 김지연은 매번 두 그릇씩 비웠다.

오늘 그 탕의 맛은 변함이 없었지만, 김지연은 진한 해물 냄새를 맡자마자 속에서 메스꺼움이 울컥 치밀어 올랐다.

유 아주머니가 다급해져서 급히 다가와 탕을 확인했지만, 아무런 문제도 발견하지 못했다. 손에 든 것을 내려놓고 그녀의 등을 두드려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 역시 아이를 낳아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모님, 혹시 임신하셨어요?”

김지연의 작은 얼굴이 새빨개졌다. 메스꺼움을 참으며 서둘러 해물탕을 멀리 밀어냈다.

“아니에요. 저 생리 끝난 지 얼마 안 됐어요.”

그 한마디로 의심을 잠재웠다. 김지연은 유 아주머니가 더 의심할까 봐 재빨리 식당을 떠났다.

2층 서재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그녀는 계단을 오를 때 저도 모르게 발걸음을 조심했다. 방으로 돌아가 잠옷 한 벌을 챙겨 곧장 손님방으로 가 씻고 잠자리에 들었다.

한밤중 허리에 묵직한 것이 느껴져 그녀는 깜짝 놀랐다. 정신이 반쯤 깬 상태에서 옆에 있는 사람을 밀어내려 하자, 강한 힘이 그녀의 머리를 단단한 가슴팍으로 끌어당겼다.

익숙한 우디 향에 섞인 옅은 담배 냄새가 코끝으로 스며들자, 김지연은 저도 모르게 눈가가 축축해졌다.

“지금 뭐 하는 거예요?”

강태준은 몹시 졸린 듯 나른하고 감미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가만히 있어, 자자.”

그렇게 말하며 그는 그녀를 좀 더 꽉 껴안았다. 상대방이 편한지 불편한지는 상관없이 그녀를 자기 심장께에 억지로 눌러 붙였다.

김지연은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의 품 안에서 작게 버둥거리며 그의 구속에서 벗어나려 애썼다.

그녀는 일부러 1인용 이불을 가져와 손님방으로 피했다. 그가 갑자기 마음이 동해 부적절한 짓을 강요할까 봐서였다. 지금은 뱃속의 아이를 지켜야 했다. 다시는 사고가 일어나선 안 됐다.

그렇게 생각하자 김지연은 지금 자신의 처지가 매우 위험하다고 느꼈다. 이렇게 꽉 껴안는 걸 보니, 정말 짐승 같은 짓을 하려는 건 아닐까?

그럴 가능성이 없지도 않았다.

그의 그쪽 욕구가 늘 어땠는지는… 그녀가 잘 알고 있었다.

두 겹의 천 너머로 자신의 것이 아닌 체온이 전해져 왔다. 김지연은 차가운 숨을 들이마시며 생각했다. 내일 이혼인데, 오늘 밤 이 남자를 어떻게 떨쳐내야 할까?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의 성격을 알았다. 반항은 그의 통제욕을 자극할 뿐이었다.

하필 이 1인용 이불은 두 사람이 덮기엔 너무나 비좁았다. 게다가 그의 몸집이 커서, 두 사람이 딱 붙어야 겨우 둘 다 덮을 수 있었다.

“강 대표님?”

그녀가 시험 삼아 불렀지만 강태준은 반응이 없었다. 그는 이미 거의 잠에 빠진 상태였지만, 그럼에도 허리를 감은 팔은 그녀를 자기 몸속으로 으스러뜨릴 듯했다.

“방 잘못 찾아오셨어요. 여긴 손님방이에요.”

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일깨워주었지만, 여전히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이러는 거 윤진아 씨한테 미안하지도 않아요?”

마치 잠든 사자의 꼬리를 밟은 듯, 강태준이 갑자기 눈을 번쩍 떴다. 그는 몸을 뒤집어 그녀를 아래에 깔고 쏘아보았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그 깊고 긴 눈매는 선명하게 보였다. 이 밤보다도 더 속을 알 수 없는 눈빛이었다.

역시 윤진아는 그의 역린이었다. 건드리면 그에게 죽임이라도 당하는 걸까?

어차피 이혼할 마당에, 김지연은 이 순간 문득 모든 걸 내던지고 그의 바닥을 시험해보고 싶어졌다. 예전에는 그 앞에서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그에게 미움받을까 봐, 귀찮은 존재가 될까 봐 두려웠다.

이제 그는 그녀를 버리고 그의 첫사랑을 품에 안으려 하는데, 이보다 더 나쁜 결과가 있을까? 예전에 몸을 낮추고 비굴했던 것은 단지 그가 자신을 사랑하게 만들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사랑이란 것이 구걸해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사랑하지 않으면 뭘 해도 소용없다는 걸 어찌 알았을까.

“뭐 하는 거야?”

“제가 뭘요?”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

강태준이 픽 하고 낮게 웃었다. 그는 고개를 좀 더 가까이 숙여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는, 숨소리가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내가 뭘 할 것 같은데? 아니면, 내가 뭘 해주길 기대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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