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장
김지연은 저도 모르게 목을 움츠렸다. 귓가를 스친 간지러운 감각이 순식간에 피를 타고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강 대표님, 저희 이혼했어요. 한방에서 잘 수 없고, 한 이불은 더더욱 안 돼요. 강 대표님은 안방으로 돌아가세요. 손님방 침대는 너무 딱딱해서 대표님의 귀한 몸에 맞지 않아요.”
그녀는 그가 정말 무슨 짓이라도 저지를까 봐 떨리는 목소리로 두 사람이 합의 이혼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나랑 한 이불 덮는 거 좋아했잖아, 당신.”
강태준의 말투에는 약간의 비웃음이 섞여 있었다. 김지연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마치 뺨을 맞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의 말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었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몇 달간, 그는 청원동 빌라에 잘 돌아오지 않고 다른 집에서 혼자 지내는 날이 잦았다. 그녀는 그를 돌아오게 하려고 온갖 방법을 동원했고, 심지어 섹시한 슬립까지 입었었다. 그때는 얼굴을 자주 보면 정이 들고, 시간이 지나면 마음을 알아줄 거라 생각했다. 그녀는 자신의 이 외모에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고, 노력만 하면 그의 눈에 들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그저 어리석었을 뿐이다.
강태준이 그녀의 몸 위에서 팔로 몸을 지탱하며 일어났다. 방금 그 ‘강 대표님’이라는 호칭에 가슴이 따끔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녀는 예전에 늘 그를 ‘태준 씨’라고 불렀었다. 문득 그녀의 입에서 ‘여보’라는 말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네 여보야.”
그의 평온한 어조는 거스를 수 없는 압박감을 주었다. 평소 같았으면 김지연은 감히 반박할 생각도 못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두 사람은 이혼할 것이다.
“내일이면 아니잖아요.”
김지연은 위에서 내리꽂는 그의 시선에 마치 도마 위 생선이 된 것만 같았다.
“내일 일은 내일 얘기하고. 난 지금만 살아. 지금 넌 날 여보라고 불러야지!”
두 사람의 관계가 이 지경까지 왔는데, 대체 뭘 더 다툴 게 남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의 속내를 짐작할 수 없어 김지연은 속으로 가슴이 두근거렸지만,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다.
“강 대표님이야 당신을 여보라고 불러줄 사람이 없어서 걱정이겠어요? 온 경시 여자들이 다 당신을 여보라고 부르고 싶어 하는데. 어쩌면 내일 구청 문 나서자마자 바로 누가 외칠지도 모르죠.”
김지연이 이렇게 말한 것은 당연히 윤진아를 겨냥한 것이었다. 그녀는 강태준이 이혼하기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으니, 아마 강태준이 2층에서 이혼 서류를 처리하자마자 윤진아가 그를 끌고 3층으로 올라가 혼인 신고를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너도 그러고 싶다는 건가?”
김지연은 말문이 막혔다. 대체 무슨 사고방식이지? 저 얼굴을 하고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었다면, 영락없는 근거 없는 자신감에 찬 남자였다.
“지금 당장 한번 불러봐!”
김지연은 그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혼 전날 밤에 여보라고 부르라니, 정말 황당한 요구였다. 두 사람이 혼인 신고를 한 첫날 밤, 그녀가 ‘여보’라고 불렀다가 그의 칼날 같은 눈초리와 합의서 한 장을 받았던 기억이 생생했다. 그 후로 그 두 글자는 입에도 담지 않았다.
“왜, ‘여보’라고 부르는 게 그렇게 어려워? 한 번 부를 때마다 가방 하나씩, 어때? 아니면 울면서 부르고 싶나? 그것도 괜찮고!”
김지연은 모욕감을 느꼈다. 심장이 잘게 저며오는 듯 아팠다.
예전에 그는 그녀와 관계를 가질 때마다 보상으로 가방을 하나씩 사주곤 했다. 두 사람은 부부라기보다, 돈과 물건을 주고받는 거래 관계에 더 가까웠다.
자신은 그의 아내가 아니라, 그가 돈으로 산 여자 같았다.
드레스룸 한쪽 벽을 가득 채운 명품 가방들을 그녀는 한 번도 건드리지 않았다. 하나하나가 자존심이 발밑까지 짓밟힌 증거였다.
이런 치욕은 오늘로 충분했다.
김지연은 그를 보며 씁쓸하게 웃었다. 마음속으로 계속 되뇌었다.
강태준, 이제 더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거야!
꺼져, 이 쓰레기 같은 놈!
강태준은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는 듯, 거칠고 다급하게 입을 맞춰왔다. 김지연이 몇 번 피하자, 쥐 죽은 듯 조용한 방 안에 치아가 부딪히는 소리가 몇 번 울렸다.
“너… 이거 놔. 한 번만 더 강제로 하면 경찰에 신고할 거야!”
강태준은 품 안의 여자가 오늘은 정말 싫어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내숭을 떠는 것인지 아닌지 정도는 구분할 수 있었다.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말을 듣자 실소가 터져 나왔다.
예전에는 토끼처럼 순하기만 하더니, 이제는 감히 대들고 경찰까지 들먹이며 협박하다니. 온 경시를 통틀어 감히 강 도련님에게 이렇게 구는 사람은 없었다.
이 여자가 오늘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구나!
“그럼 마음대로 고소해 봐. 오늘은 내가 하고 싶으니까.”
몇 마디 진심과 몇 마디 협박이 섞인 말에 김지연은 이미 겁에 질려 그의 몸 아래에서 몸을 웅크렸다. 손이 저도 모르게 아랫배로 향했다.
뜨거운 눈물 두 방울이 눈꼬리를 타고 흘러내렸다.
김지연은 이 남자가 협박을 가장 싫어하며, 강하게 나가는 것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갑자기 어찌할 바를 몰랐다. 만약 그가 정말 강제로 하려 든다면, 남녀의 힘 차이가 현격한 만큼 저항할 수 없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절 놔주실 거예요?”
몸 아래의 작은 여자가 갑자기 서럽게 울먹이며 눈물을 글썽인 채 그를 쳐다보자, 강태준은 마음이 흔들렸다. 그는 그녀가 눈물 글썽이는 모습에, 특히 침대 위에서는 가장 약했다.
결국 그의 마음이 부드러워졌다.
“여보라고 한 번 부르면 봐주지.”
“꿈도 꾸지 마세요!”
강태준의 막 펴졌던 미간이 다시 찌푸려졌다.
좋아, 아직도 뻣뻣하게 구는군.
“안 부르겠다?”
그의 거친 입맞춤이 그녀를 집어삼킬 듯이 온몸을 덮쳐왔다. 김지연은 저항할 힘이 전혀 없었다. 그녀는 좌우로 피하며 두 손으로 그의 단단하고 뜨거운 가슴을 밀어냈다. 뱃속의 작은 생명을 생각하자, 두려움에 작은 소리로 흐느끼기 시작했다.
“여보, 여보… 놔주세요, 제발.”
그녀가 이런 상태이니, 강태준도 아무리 급했어도 흥이 식어버렸다. 하물며 그는 원래 그저 그녀를 안고 자기만 하려던 참이었다. 그를 자극한 건 그녀 쪽이었다.
그녀가 청원동 빌라를 떠난 후, 그는 단 하루도 편히 잠든 날이 없었다.
강태준은 만족감을 느끼며 다정하게 그녀의 눈가를 닦아주었다.
“잘 부르네. 앞으로도 그렇게 불러.”
그는 칭찬 한마디를 던지고는 그녀의 몸에서 내려와 옆에 누워 숨을 골랐다.
김지연은 슬립을 정리하고 팔짱을 낀 채 작게 몸을 떨었다. 다음 순간, 그녀의 몸이 따뜻한 품 안으로 끌려 들어갔고, 그의 커다란 손이 무심코 그녀의 아랫배에 닿았다.
김지연의 온몸이 저도 모르게 가늘게 떨렸다.
“내가 그렇게 무서워? 뭘 그렇게 떨어?”
“자. 안 건드릴 테니까.”
그렇게 말하며 그는 그녀를 품 안으로 조금 더 끌어당겼다. 이불은 결국 작았다.
김지연이 진정하고 보니 옆의 남자는 이미 잠들어 있었다. 규칙적인 호흡에 따라 가슴이 오르내렸고, 머리 위로는 그의 따뜻한 숨결이 느껴졌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그의 얇은 입술을 바라보았다.
오직 이럴 때만, 그녀는 이렇게 대담하게 그를 뜯어볼 수 있었다.
다들 저런 입술을 가진 사람은 박정하다고들 했다. 하지만 그는 윤진아를 지금까지 잊지 못하는 것을 보면, 분명 정이 깊은 사람이었다. 그의 사랑을 받는 사람은 정말 행복하겠지.
다음 날, 김지연이 눈을 떴을 때 침대에는 이미 강태준의 모습이 없었다.
그녀는 기지개를 켜다가 손안에 그의 부카드와 쪽지 한 장이 쥐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나 B시로 출장 가. 언제 돌아올지 몰라. 며칠 동안 본가에 가 있어. 유수현네 집에는 절대 가지 마!!!】
김지연은 놀림당한 기분이었다. 오늘 이혼 서류를 처리하기로 약속했는데, 그가 갑자기 출장을 가버렸으니 이혼은 또 언제로 미뤄질지 몰랐다.
왜 그가 본가에 가라면 순순히 가야 하는가.
절대 안 가지.
김지연은 일어나 옷가지를 챙겨 다시 캐리어에 쑤셔 넣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계단 입구에서 아래층에 있는 사람을 보고는 걸음을 멈칫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