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장 원장님은 엄숙한 얼굴로 서윤아의 맥을 짚었다. 그의 표정은 진지하기 그지없었다.

잠시 후, 그는 한숨을 내쉬며 손을 거두다 옆에 놓인 향을 힐끗 쳐다봤다. 자신이 직접 배합한 것으로, 서윤아가 이토록 깊이 잠든 이유이기도 했다.

“맥상으로 보아 몸에는 큰 이상이 없습니다. 심장과 비장이 모두 허하고, 정서적으로 불안하고 초조한 듯합니다…….”

장 원장님은 신중하게 단어를 골랐다. 그가 방에 들어온 순간부터 강 대표의 시선은 침대에 누워 있는 사람에게서 떠나질 않았다. 날카롭던 눈매는 오직 침대 위의 그녀를 향할 때만 부드럽게 풀렸다.

호기심에 두어 번 더 쳐다봤다가 경고까지 받지 않았던가! 장 원장님은 속으로 뜨끔하며 감히 더는 주변을 두리번거리지 못했다.

자리를 뜨려던 그는 문득 생각난 듯 한마디 덧붙였다. “향은 너무 자주 피우지 마십시오….”

예전 같았으면 장 원장님의 당부를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을 강지후였지만, 이번에는 그가 살짝 주의를 주자마자 바로 향을 꺼버렸다.

강지후의 불면증은 워낙 심각해서 장 원장님이 향을 조제할 때 약재의 양을 꽤 많이 넣었다. 그럼에도 강지후에게는 효과가 미미했다.

하지만 서윤아 같은 보통 사람에게는 효과가 아주 뛰어났다. 심신 안정에도 도움이 되니, 어쩌다 한 번쯤은 괜찮았다.

강지후가 이렇게 순순히 말을 듣는 건 처음 보는 터라, 장 원장님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웬만해선 남의 일에 관심도 없던 그였지만, 문득 이 아가씨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호텔을 나서면서도 그는 생각했다. 앞으로 강 대표라는 이 말 안 듣는 환자를 휘어잡을 사람이 생긴 걸까….

서윤아의 몸에 이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강지후는 마음을 놓았다. 그는 남은 CCTV 영상을 마저 확인했다.

그가 자리를 비운 동안 청소 직원을 포함해 그 누구도 방에 들어오지 않았다. 영상은 조금도 빨리 감지 않고 전부 재생했다.

서윤아가 나타난 후, 강지후는 미칠 듯한 기쁨 속에서도 한 줄기 이성을 붙잡고 있었다. 혹시나 사기극일까 봐 두려웠다.

지난 몇 년간, 꿍꿍이가 있는 자들이 일부러 서윤아와 닮은 여자들을 찾아 그에게 접근시켰다. 한 번 한 번 더욱더 닮은 여자들을 내세웠고, 그는 그때마다 배후의 인물들을 가차 없이 처리했다.

한동안 아무도 감히 이 문제로 그의 심기를 건드리지 못했다. 하지만 강 씨 가문의 적들이 다시 이 점을 이용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었다.

강지후는 침대 옆에 반쯤 무릎을 꿇고 앉아 서윤아의 손을 자신의 뺨에 가져다 대고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밤낮으로 그리워하던 얼굴을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는 짙은 안개에 뒤덮여 그 속을 헤아릴 수도, 걷어낼 수도 없었다.

지금까지 어떤 허점도 찾지 못했다. 만약 이 모든 것이 정말 고도의 사기극이라면, 기꺼이 당해주리라.

강지후는 자신의 윤아가 정말로 돌아왔다고 믿고 싶었다.

서윤아는 아주 깊은 잠을 잤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 그녀는 옆에서 자신을 끌어안은 채 눈 밑이 시퍼렇게 변한 강지후를 한참 동안 멍하니 바라보았다.

자신이 실종되었던 15년 동안, 지후와 아이들이 어떤 일을 겪었을지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

“윤아, 잘 잤어?”

잠에서 깬 강지후의 눈에 먼저 스친 것은 당황스러움이었다. 하지만 곁에 서윤아가 있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안심하며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었다.

어젯밤부터 지금까지, 서윤아가 그의 미소를 본 것은 처음이었다. 한때는 그렇게 잘 웃던 사람이었는데.

서윤아는 어제 강지후가 아이들과 그 사이에 오해가 있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이들’이라고 복수형으로 말한 것을 보면, 은우뿐만 아니라 설이랑 보름이도 이 아버지와 갈등이 있다는 뜻이리라…….

서윤아는 이 점이 마음에 걸렸지만 더는 묻지 않았다. 돌아가서 아이들을 직접 만나본 후에 이야기하기로 마음먹었다.

아침 식사를 간단히 마치고 두 사람은 귀국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사실 강지후는 서윤아가 마음에 담아두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하지만 감히 먼저 말을 꺼내지 못했다. 아이들과 그의 관계가 냉랭할 뿐만 아니라, 아이들 사이의 관계 또한…….

서윤아에게는 세 아이가 있었다. 비행기 사고 당시 큰아들은 여섯 살, 쌍둥이는 두 살이었다.

귀국하기 전, 그녀는 강은우와 먼저 통화를 해야 할지 고민했다. 하지만 자신의 이 기이한 상황을 한두 마디로 설명할 수도 없고, 오히려 아들이 오해하고 엉뚱한 생각을 하게 만들까 싶어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기로 했다.

서윤아는 그 오랜 세월 동안 엄마 없이 자랐을 아이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저릿해졌다.

이쪽에서 서윤아의 마음이 편치 않은 것처럼, B시의 강은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주로 화가 나서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아침 일찍 본가 저택으로 돌아온 그는, 정원에 다마스크 로즈가 새로 한가득 심어진 것을 발견했다.

이건 어머니가 좋아하시던 꽃이었다! 그 여자가 이것까지 흉내 낸단 말인가?

어머니가 비행기 사고로 돌아가신 후, 본가 저택의 가구 배치는 15년 동안 하루같이 똑같았다. 꽃병 하나 바꾼 적이 없었다.

그런데 눈앞의 풍경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낡은 소파는 새것으로 바뀌었고, 계단 카펫은 새로 깔렸으며, 티 테이블까지 전부 교체되어 있었다.

미쳤나?! 새 여자를 위해 어머니의 모든 흔적을 지우려는 건가?!

강은우의 눈에 살기가 번뜩였다. “멈춰! 아무것도 바꾸지 마!!”

청소하느라 분주하던 사용인들이 깜짝 놀라 일제히 손을 멈추고는 도움을 구하듯 집사님을 쳐다봤다.

집사님이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말했다. “도련님, 회장님의 지시입니다.”

“대체 뭘 지시했는데?”

강은우의 목소리는 얼음 조각이라도 섞인 듯 차가웠고, 집사님은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큰도련님의 성격을 잘 아는 집사님은 감히 얼버무리지 못했다.

“집 안팎 대청소, 정원에 다마스크 로즈 심기, 그리고 3층 안방 먼지 제거 및 청소…….”

강은우의 얼굴이 무섭게 굳어지자 집사님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본가의 사용인들은 모두 3층 안방이 금지된 장소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곳은 큰도련님의 어머니가 지내시던 방으로, 지난 세월 오직 회장님만 들어갈 수 있었다. 방 안 청소 역시 회장님이 직접 하셨고,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리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회장님이 사용인들에게 정리를 지시한 데다, 다른 지시 사항까지 더해지니 다들 속으로 짐작하고 있었다.

—이 집에 새로운 여주인이 들어올 것이다!

집사님은 말을 마친 후 다른 사용인들에게 계속하라는 눈짓을 보냈다. 큰도련님이 듣고 나면 더는 상관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움직이지 말랬잖아, 안 들려!”

강은우는 그렇게 이해심이 깊지 않았다. 아버지가 다른 여자와 함께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을 이렇게 역겹게 만들지는 말아야 했다!

새사람이 생겼으면 나가서 살면 될 것 아닌가! 왜 어머니가 생활했던 흔적이 남은 곳을 지우려 하는가!

게다가 그 여자는 명백히 어머니와 닮은 외모를 무기 삼아 그 자리를 꿰찬 게 분명했다! 그런 식으로 어머니의 모든 것을 차지하고 안방마님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절대 불가능했다!

결국 집사님은 감히 사용인들에게 계속 청소하라고 시키지 못했다.

소파에 앉아 있는 강은우의 기세가 몹시 험악한 것을 보고 집사님은 내심 불안해졌다. 회장님이 새 사모님을 모시고 돌아오시면, 큰도련님이 한바탕 난리를 피울 것만 같았다!

그동안 집사님은 계속해서 강지후에게 연락을 시도했지만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다. 그러다 밖에서 들려오는 차 소리를 들었다.

집사님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회장님이 돌아오셨다!

집안의 사용인들은 숨을 죽였다. 실내의 기압이 너무나도 낮았다!

집사님은 서둘러 밖으로 나가 마중했다. 연녹색 원피스를 입은 새 사모님을 본 집사님은 몇 초간 멍하니 굳어버렸다.

그는 10년 전에 강 씨 집안에 들어왔다. 비록 사진으로만 사모님의 모습을 봤지만, 눈앞의 새 사모님이 그분과 완벽하게 똑같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원래 집사님은 한 남자가 아내를 위해 15년을 지켰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새 사모님을 보니, 회장님이 아직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게 분명했다!

“회장님, 큰도련님께서 안에 계십니다. 그게, 기분이 별로 안 좋으신 듯합니다.”

뒷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이 새 사모님의 미간이 환하게 펴지며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 “은우가 집에 있어요?!”

서윤아는 돌아오자마자 아들을 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그녀는 강지후의 팔짱을 풀고 서둘러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갑자기 텅 비어버린 팔을 내려다보던 강지후의 기운이 살짝 가라앉았다. 그는 곧바로 그녀의 뒤를 따랐다.

집사님은 망연자실했다.

새 사모님이 큰도련님에게 잘 보이려고 저렇게 서두르시는 건가? 아무래도 큰일 나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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